전쟁의 상처 위에 세워진 돌봄의 집
무궁애학원은 한국전쟁 이후 부모와 가정을 잃은 아이들을 돌보던 시설에서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돌봄의 현장은 양산 물금에 자리 잡았고, 1955년 후생시설 인가와 1957년 재단법인 인가를 거쳐 오늘의 법인으로 이어졌습니다.
무궁애학원 소개
무궁애학원은 장애인의 생활과 일상, 직업, 단기 거주를 지원하며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함께 고민합니다.
역사
무궁애학원의 역사는 한 개인의 미담보다, 한국 사회의 아픔을 돌봄과 전문 복지로 이어 온 기관의 시간에 가깝습니다.
무궁애학원은 한국전쟁 이후 부모와 가정을 잃은 아이들을 돌보던 시설에서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돌봄의 현장은 양산 물금에 자리 잡았고, 1955년 후생시설 인가와 1957년 재단법인 인가를 거쳐 오늘의 법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시설 인수와 물금 이전을 거치며 무궁애학원은 생활환경을 정비하고 오래 이어갈 돌봄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창립자 박재석장로, 이금지권사의 뜻은 개별 서사를 넘어 기관이 오래 붙들어 온 돌봄의 책임으로 남았습니다.
전쟁고아와 가난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줄고 한국 사회의 복지 정책이 바뀌면서, 무궁애학원은 고아 보호시설에서 장애인 복지시설로 역할을 넓혔습니다. 돌봄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보는 태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무궁애학원은 보호와 양육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 교육, 재활, 직업, 지역사회 거주지원으로 역할을 넓혀 왔습니다. 지금은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필요한 지원을 함께 설계합니다.
공간
돌봄의 시간은 오늘의 생활환경과 지원체계로 이어졌습니다.


돌봄 문화
오래 이어진 돌봄의 언어는 오늘의 복지 현장에서 입주민의 권리와 개성을 존중하는 운영 원칙으로 이어집니다.
무궁애학원의 돌봄 문화는 예배와 기도, 감사와 섬김의 생활 속에서 자랐습니다. 매일의 예배와 말씀은 종교 행사를 넘어,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근면, 검소, 봉사는 무궁애학원이 오랜 시간 붙들어 온 운영 태도입니다. 공동창립자 박재석장로, 이금지권사가 남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교훈은 어려운 시대를 지나오며 기관이 붙들어 온 신앙의 언어이자 생활의 태도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적 돌봄은 오늘의 복지 현장에서 인권 중심의 서비스 원칙으로 이어졌습니다. 무궁애학원은 폭력과 차별을 금지하고, 개성과 사생활을 존중하며, 입주민의 목소리를 듣는 지원을 지향합니다.
법인 개요
운영 시설
생활과 거주를 지원합니다.
직업과 낮활동을 지원합니다.
단기 거주와 돌봄을 지원합니다.
장애가 장벽이 될지 개성이 될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무궁애학원은 장애가 장벽이 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원합니다.